커다란 생각, 그리고 미래 – BMW 라트 허브(rad°hub) 뮌헨 참관기(2)
(1부에서 이어집니다) 그룹 토의를 통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시스템의 무결성과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온 두 여성은 맞춤 서비스는 바라면서도 개인 정보의 노출은 대단히 꺼립니다. ‘아,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코로나 추적 시스템을 바라보던 유럽의 시선 가운데 하나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두 번째 그룹 세션입니다. ‘디지털화의 다차원성 – 증가하는 복잡성을 우리는 어떻게 잘 이해할 것인가?’ 주제는 더 어려워집니다. 사실 이 세션에서 우리 조원들은 완전히 멘붕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 멘붕은 새로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럽의 여성들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민감도가 매우 높은 반면 저와 같은 아시안 공돌이(?)는 시스템의 무결성, 즉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두 번째 세션은 멘붕으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참 훈훈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이해가 되지 않던 우리 그룹원들이 서로를 걱정하고 이해하는 인간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막연한 기술에 대한 동경이나 두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디지털화가 고도화되고 개인 데이터의 경계가 대단히 섬세하고 예민해진다고 하더라도 인간 중심의 사고가 존재한다면 어떻게든 해결책은 나온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술은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자 우리는 빠르게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첫 날 일정이 끝났고 각 그룹별로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BMW 라트 허브(rad°hub) 뮌헨 이튿날 일정은 첫 날의 결과물을 모두 앞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인공지능 툴이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도출한 결론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추상화의 형태로 만들어주는 도구였습니다. 우리 그룹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테일러메이드 모빌리티 서비스를 2040년의 이상적인 디지털 모빌리티로 제시하였는데 아래 그림의 왼쪽이 그 결과입니다.
발표 세션에서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건 BMW 그룹 경영진의 일원인 니콜라스 피터 박사가 함께 참가하여 발표 내용을 놓고 서로 질문과 대답을 나누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BMW가 우리의 상상을 이미 얼마나 염두에 두고 구체화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또한 각 시나리오 사이에 존재하는 어려운 점과 우선순위 등 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서로에게 피드백할 수 있었습니다. 결코 발표에서 끝나지 않았던 겁니다.
니콜라스 피터 박사의 총평에 이어 우리는 마지막 조별 세션을 가졌습니다. 마지막 세션의 질문은 ‘지속가능성, 인간성, 건강, 성능, 안전성 관점에서 우리는 인간과 기술적 시스템 사이의 영향과 상호작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였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질문이라기보다는 강조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미래 사회를 설계할 때 지속가능성, 인간성, 건강, 성능, 안전성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마지막 세션이 발표 이후에 자리 잡은 게 아니었을까요? 즉,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나는 이것 가운데 어느 하나도 희생하지 않기 위하여 무슨 다짐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개의 구체적인 질문이 주어졌고 나는 이렇게 답을 적었습니다.
‘디지털화는 열리고 공평한 민주화이어야 하며
밝은 미래를 위하여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바로 ‘인간’이다.’
이렇게 하여 BMW 라트 허브(rad°hub’) 뮌헨은 끝이 났습니다.
첫인상은 막연한 듯 시작했지만 내 머릿속은 점점 또렷하게 정돈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BMW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일화를 소개합니다. 디지털 모빌리티는 대체적으로 도시 교통, 즉 어반 모빌리티를 핵심 주제로 간주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BMW 관계자의 흘리는 듯한 말 한마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유럽 BMW 고객의 98%는 도심이 아닌 교외에 살아요. 그러니까 최소한 유럽에서는 어반 모빌리티가 우리에게 절실한 사업 모델을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BMW는 곧바로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는 컨설팅 목적으로 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보다는 더 넓고 깊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미래 모빌리티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다분히 전략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BMW가 지난 세기 가장 성공적인 프리미엄 브랜드의 하나로 우뚝 선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략적 사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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