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라드 테마 시승기]
BMW 모토라드 K 1600 GT가 궁극의 투어링 모터사이클인 이유
전국에는 라이딩 명소가 여럿 있습니다. 라이딩 랜드마크라고 할까요. 수많은 라이더가 길을 찾아 라이딩을 즐기다가 다다른 곳이죠. 하나둘 인증사진이 쌓이고, 또 그걸 보고 다른 라이더가 방문합니다. 아무 장소나 라이딩 랜드마크가 될 수 없죠. 모터사이클을 세워놓고 사진 찍었을 때 멋있어야 합니다. 도달했다는 표식이니까요. 그러면서 당연히 가는 길이 라이딩하기에 좋아야 합니다. 언제나 핵심은 모터사이클을 타는 라이딩이니까요.
한반도의 북쪽 끝 철원 노동당사도 그런 곳입니다. 1946년에 북한이 지었어요. 한국전쟁 이후 국군이 수복해 한국 영토가 됐죠. 소련식 건축물로, 격전지의 중심이었기에 수많은 총탄과 포탄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 자체로 상징적인 기념물이 된 거죠. 북쪽으로, 또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노동당사를 배경으로 모터사이클을 찍은 사진이 많아요. 이제 더는 북쪽으로 달릴 수 없는 아쉬움을 담은 한 컷이랄까요.
노동당사로 가는 길은 쾌적합니다. 남양주 지나 포천, 포천 지나 철원까지 이어지죠. 교통량도 적고 길도 시원하게 나 있어요. 쭉 뻗은 길이 이어지기에 포천의 국도를 ‘포천 아우토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양옆에는 초록의 향연이라 멀리 떠나는 기분도 자극하고요. 북쪽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마음이 작용하겠죠.
노동당사까지 BMW 모토라드 K 1600 GT와 함께했습니다. 어디든 끝을 향해 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터사이클이죠. BMW 모토라드의 기술력이 집약된 궁극의 투어링 모터사이클. 원래 대륙의 끝과 끝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려야 제 맛이지만, 대한민국의 끝은 끝이니 기분이라도 낼 수 있죠.
얼마 전 BMW 모토라드는 K 1600 GT를 새로 출시했습니다. 풀 LED 헤드라이트로 눈매를 가다듬고 코너링 라이트를 적용해 시야도 넓혔죠. 새로 적용한 10.25인치 풀 디지털 계기반은 시트에 앉은 라이더를 뿌듯하게 할 요소입니다. 덩치에 걸맞게 시원하게 정보를 보여줘요. 개선한 오디오 시스템도 투어링의 만족도를 높여줄 요소죠. 다 시대 흐름에 맞춰 개선한 부분이에요. 안전과 편의 하면 또 BMW 모토라드잖아요?
개선된 편의장치는 덤 같은 거죠. 다다익선이에요. 특히 브랜드의 기함 역할을 하는 대형 투어링에겐 빛나는 훈장입니다. 그럼에도 본질은 따로 있어요. 엔진이죠. 탈것은 다 그렇지만 특히 모터사이클은 엔진의 맛이 전부를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K 1600 GT은 결정적 엔진을 품었죠. 모터사이클 엔진의 ‘최종 보스’ 같은 1649cc 직렬 6기통 엔진입니다. 6기통 엔진을 느끼고 싶어 K 1600 GT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철원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K 1600 GT의 스타트 버튼을 눌렀습니다. 중저음의 배기음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첫 느낌부터 다르긴 달라요. 복서 엔진의 털털함과도, 4기통 엔진의 날카로움과도 다릅니다. 커다란 울림통에서 낮고 풍성한 소리가 주위를 울립니다. 웅장해요. 6기통 엔진 품은 모터사이클이 드물기에 시동 버튼만 눌러도 뿌듯해집니다. 다르다는 건 모터사이클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죠.
K 1600 GT의 무게는 343kg입니다. 길고 큰 차체가 무게를 짐작케 합니다. 처음에는 그 덩치에 마른침을 삼키게 되죠. 시트고는 810mm이지만, 시트가 넓적해서 키가 175cm인 사람도 까치발로 서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죠. 언제나 처음 남의 모터사이클을 타면 긴장하지만,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이 확실히 큽니다.
하지만 긴장은 거기까지. 첫 대면 후 잠깐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면 긴장은 사라집니다. 일단 무게중심이 낮아요. 덩치와 무게는 확실하지만, 중심이 낮게 깔려서 불안감이 적습니다. 게다가 저속에서 조종성이 놀랍도록 좋아요. 핸들바는 너무 가볍지 않고, 저속 토크는 충분합니다. 낮은 무게중심과 부드러운 핸들링, 넉넉한 저속 토크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니 차체를 손쉽게 조종할 수 있습니다. 어라, 생각보다 순하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가다 서고 좌회전과 우회전을 반복해야 하는 시내에서 저속 조종성이 편하면 금세 적응할 수 있습니다. 적응만 끝나면 커다란 덩치는 곧 안정감의 다른 말이죠. 묵직하게 낮게 깔린 차체는 안락하고 편안한 라이딩을 보장합니다. 이제부터는 기함다운 풍요로움을 느끼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갈 뿐이죠. 6기통 엔진을 활기차게 돌릴 시간이란 뜻입니다.
교통량이 줄어들수록 길 주변은 초록빛으로 번져갑니다. 그에 맞춰 스로틀을 더 과감하게 비틀 기회 역시 늘어갑니다. 그럴 때마다 K 1600 GT는 중후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접듯이 달려 나갑니다. 그 일련의 과정이 매끄러워요. 조급하거나 신경질적인 면은 조금도 찾을 수 없어요. 6기통 엔진은 작은 빈틈도 보이지 않고 촘촘하게 출력을 연결합니다. 거대한 파도처럼 묵직한 토크가 나아갈 방향으로 차체를 밀어붙이죠.
전체적으로 의외로 부드럽고 다분히 매끄럽습니다. 그 느낌을 배가하는 건 역시 6기통 엔진 특유의 질감과 소리예요. 4기통 엔진이 바이올린이라면 6기통 엔진은 첼로랄까요? 날카롭기보다 중후하고 예민하다기보다 풍성합니다. 스로틀을 비틀수록 우우웅, 하며 라이딩을 넘어 비행하는 기분까지 들게 합니다. 소리가 그래요, 소리가.
K 1600 GT는 최대토크가 5250rpm에서 나옵니다. 최대마력은 6750rpm에서 나오고요. 사실 그 지점까지 엔진 회전수를 높일 필요도 없습니다. 낮은 회전수에서도 힘은 충분해요. 기분에 따라 엔진 회전수를 달리 쓰는 재미가 있습니다. 낮은 엔진 회전수로 달리면 지극히 편안한 투어링으로, 엔진 회전수 높이면 스포츠 바이크 못지않은 역동성을 선사하죠.
몸놀림도 덩치가 무색하게 민첩해요. 물론 와인딩을 날카롭게 타려면 합당한 실력이 필요할 겁니다. 그럼에도 의도한 대로 잘 따라와요. 무게와 길이, 사이드케이스까지 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첩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처음 느낀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죠. 대신 그 자리에는 잠재력의 끝을 알 수 없는 기함을 탄다는 뿌듯함이 자리 잡습니다.
K 1600 GT은 시종일관 기함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노동당사까지 가면서 여실히 느꼈죠. 누구나 타면, 이것이 기함이군, 하며 끄덕일 거예요. 투어링이 갖춰야 할 다양한 덕목을 하나씩 맛보는 시간이랄까요. 전동 윈드스크린은 편하고 유용하며, 윈드 디플렉터는 신기할 정도로 바람을 잘 다스려요. 자세와 시트도 지극히 편하고요. 모터사이클계의 대형 세단답습니다.
이 정도로 편하고 쾌적하면 전국의 라이딩 랜드마크를 몰아서 가볼 수도 있겠습니다. K 1600 GT라면 능력은 충분할 거예요. 부족한 건 라이더의 의지뿐이겠죠.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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