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라드 테마 시승기]
1박2일 장거리 모터싸이클 투어, 바다 그리고 R 1250 RT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빌딩 숲에서 벗어나 자연이 있는 곳이라면 더 좋겠죠. 탁 트인 공간을 파도소리가 채우는 바다라면 금상첨화입니다. 갈 곳을 정했으니 뭘 타고 갈지 정해야 합니다.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가는 길도 즐겁길 바랍니다. 그러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럴 때면 자동차보다 모터사이클이 알맞습니다.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로, 동쪽으로 갈수록 바뀌는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죠. 쭉 뻗은 길만이 아닌 굽이굽이 넘는 길의 고즈넉함도 음미할 수 있습니다. 모터사이클은 여정 그 자체가 유희가 되니까요.
함께할 기종은 BMW 모토라드 R 1250 RT입니다. 먼 길 달리기에 이만한 모터사이클이 없죠. 편하고, 빠르고, 밀어붙이면 역동적이기까지 하죠. R 1250 RT는 원래 커다란 페어링에 동그란 눈을 조합해 사자처럼 보였어요. 이젠 눈매가 얇아지고 LED 주간주행등 그래픽을 더해 로봇 사자(?) 정도로 보입니다. 듬직한 로봇 사자 한 마리 타고 바다 보러 가는 기분, 두근거리죠.
R 1250 RT는 큽니다, 커요. 사자 갈기처럼 부푼 앞 페어링이 덩치를 더욱 부각합니다. 뒤쪽에는 사이드박스가 덩치를 부풀리고요. 처음 타려면 짐짓 부담스러울지 몰라요. 하지만 맹수 길들이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올라가면, 몸이 알아챕니다. 어라, 편하네.
시트고는 805mm로, 825mm로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신장이 175cm 정도면 805mm 시트고는 만만하죠. 물론 시트가 넓적해서 다리를 약간 벌려야 합니다. 그래도 시트고가 낮기에 발 착지성은 좋아요. 그 상태로 손을 앞으로 내밀고 툭, 떨어뜨리면 핸들에 닿습니다. 그러니까 자세가 편하다는 뜻이죠. 공격적이지도, 너무 느긋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상태.
달리기 시작하면 더욱 편해집니다. 보통 덩치가 부담스러운 녀석도 움직이면 무게가 덜 느껴지게 마련이죠. R 1250 RT는 더 극적입니다.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이며 모터사이클을 기울일 때면 한결 가뿐해요. 279kg라는 무게가 머릿속에서 사라집니다.
무엇보다 앞과 뒤의 덩치가 희미해져요. 흥미로운 감각이에요. 타기 전에는 웅장하지만 막상 타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앞과 뒤의 무게감이 싹 사라집니다. 오직 핸들과 시트, 그 위에 자리한 라이더의 존재만 느껴집니다. 그만큼 무게 균형이 뛰어나단 뜻이죠. 그 상태로 거동이 이질적인 구석 없이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이것 봐라, 신기하네.
부담이 빨리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즐기는 시간은 늘어납니다. 이내 R 1250 RT에 적응하고 여정의 즐거움에 집중할 수 있죠. 이럴 수 있게 영향을 미친 요소는 또 있습니다. 서스펜션이에요. R 1250 RT에는 BMW가 자랑하는 전자식 서스펜션이 장착됐죠.
‘구름 위의 산책’이란 말은 이럴 때 써야 제격일 겁니다. 차체 아래 포근한 막이 있는 기분이에요. 노면 상태와 상관없이 두둥실, 떠가는 안락함을 선사합니다. 몸놀림은 가뿐하고 하체는 말캉말캉 부드러워요. 정말 산책하는 기분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속도는 산책이 아닌 스프린터의 전력질주겠죠. 결정적 특성입니다. 몸은 느긋한데 속도는 빠른, 투어링의 핵심을 파고드는 부분이죠.
안락함을 더하는 요소는 더 있습니다. 윈드실드예요. 전동식입니다. 버튼 하나로 높이를 조절할 수 있죠. 이거 물건입니다. 다 올리면 헬멧으로도 바람이 들어오지 않아요. 다 내리면 헬멧 부근으로 바람을 만끽할 수 있죠. 거대한 페어링이 바람을 한 번 거르고, 윈드실드가 두 번 거릅니다.
바람 저항은 장거리 라이딩의 피로도를 높입니다. 바람을 즐기는 게 라이딩이지만, 몸으로 들이치는 바람은 피로를 쌓아올리죠. 전동식 윈드실드는 손쉽게 주행 중에 조절할 수 있어요.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람을 느끼거나 바람을 피하거나 할 수 있죠. 고속에선 올리고, 저속에선 내리면 좋은 것만 쏙쏙 빼먹으며 달리는 셈입니다.
근두운 탄 손오공처럼 달리다 보니 금세 도 경계를 넘었습니다. 안락한 만큼 좌우 풍경 보는 즐거움도 더 커졌죠. 어느새 고성으로 넘어가는 백두대간 진부령이 나타났습니다. 고갯길에선 스포츠 모드로 바꾸는 게 더 짜릿합니다. 가속과 감속, 좌우 선회를 할 때 하체가 다부진 편이 더 즐거우니까요. 물론 고속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스포츠 모드로 놓으면 엔진 반응이 쾌활해지고, 하체도 탄탄해집니다. 그럼에도 편안함의 영역에 속하지만, 체감은 확실하죠. 와인딩을 즐길 심적, 물리적 준비가 끝납니다. 그렇게 굽잇길에 들어가면 이 덩치가 꽤 매끈하게 돌아나갑니다. 처음 탈 때부터 와인딩까지 부담이 적어요, 부담이.
물론 코너에서 날카로운 감각은 아닙니다. 그건 완전히 다른 장르의 몫이니까요. 그럼에도 복서엔진의 가슴 떨리는 펀치력과 균형 감각 좋은 차체가 만나니 공격적인 면모도 내비칩니다. BMW 모토라드답게 꽉꽉 채운 주행 안전장치가 열심히 일한 덕분이기도 하죠.
이제 적응해서 제대로 타볼까 하는 사이, 바다에 도착했습니다. 그만큼 장거리 피로도가 적은 덕분이겠죠. 이 정도라면 7번국도 타고 쭉 내려가 부산까지도 다녀와도 되겠다 싶은 마음입니다. 왜 사람들이 투어러를 타는지, R 1250 RT는 명확히 알려줍니다. 왜 투어러 중에 R 1250 RT가 꼽히는지 역시 알려줍니다.
해변 가까이 R 1250 RT를 세워두고 바다를 바라봤습니다. 딱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달려온 셈이죠.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바다를 상상하며 모터사이클에 오르고, 바다를 향해 모터사이클을 타고 온 여정 자체만으로 온몸에 포만감이 가득하니까요.
일상에서 벗어난 완벽한 기분 전환. 모터사이클이 줄 수 있는 쾌감이죠.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이 청량해집니다. 찌든 무언가를 다시 세척한 상쾌함이죠. R 1250 RT는 그 쾌감을 얻는데 무척 편하고 고급스러운 방법을 제시합니다. 근두운 탄 손오공의 기분, 궁금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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