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그래서 더 실전적인 – BMW iX5 하이드로젠 데이
아직은 시판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승 소감만으로 판단한다면 지금 바로 판매해도 될 정도로 충분하다는 결론입니다. BMW가 최근 선보인 수소연료전지차 iX5 하이드로젠 이야기입니다.
물론 가격 경쟁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지요. 파일럿 플랜트에서 생산한 시제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iX5는 이미 완벽한 패키지였기 때문입니다. X5를 베이스로 선택한 이유, 다른 수소 연료전지차와는 다른 파워트레인 레이아웃, 주행 특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소를 선택한 이유가 모두 일관성을 갖고 iX5라는 모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사실, BMW가 꿈꾸는 수소의 미래는 ‘BMW iX5 하이드로젠 데이’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수소연료차 자체는 어쩌면 우리에게 소개된 지는 조금 오래된 주제였기 때문이죠. 단지 이전의 ‘하이드로젠 7’부터 수소를 20년 가까이 미래의 연료로 붙잡고 있는 BMW라면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면 ‘전기 후륜 400마력이라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궁금증이었습니다.
이번 행사도 역시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행사장이 다릅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대신 오른쪽으로 돌아 트레이닝 센터용 입구로 들어갑니다. 그렇습니다. 이날 행사만큼은 시승이나 이벤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트레이닝, 즉 정보 전달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최근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미래 친환경 동력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기차와 수소차를 마치 경쟁하는 관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데 말이지요. 둘 다 전기차라는 점, 그리고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iX5 하이드로젠 데이는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BMW 그룹의 하이드로젠 테크놀로지를 총괄하는 위르겐 굴트너 박사의 프레젠테이션은 매우 솔직하고 담백했습니다.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일단 목적지를 분명히 합니다. “우리는 지구 온난화를 막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그래서 파리 기후 협약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키로 했다. BMW는 UN 주도의 ‘Race to zero’ 프로그램에 동참했다. 우리는 배터리 전기차(BEV)와 수소 연료 전지차(FCEV)를 포함한 가용한 모든 기술을 총동원할 것이며 생산 단계는 물론 자동차의 전체 생애 주기의 탈탄소화에 주력한다. 올해 1월 4일 현재 기준으로 2050년까지 1.6도 상승이 예측되는 가장 적극적인 브랜드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그 다음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그는 BEV에 비하여 FCEV는 효율에서는 뒤떨어진다는 것을 깔끔하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수소에게는 다른 장점이 있으므로 전기차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상호 보완재로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BEV가 효율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존재하며 이때 바로 FCEV가 보완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BMW가 X5를 FCEV용 플랫폼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즉, 대륙을 횡단하는 휴가철 유럽의 장거리 주행 패턴에는 내연기관처럼 빠른 충전이 가능한 FCEV가 현실적이며,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델이 바로 X5와 같은 대형 SUV입니다. BMW가 타 브랜드의 수소차보다 더 큰 차체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단순히 수소 탱크를 싣기 편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전기는 예측되는 최대 사용량에 안전한 여유를 더해서 생산됩니다. 그런데 전기는 생산한 뒤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에너지입니다. 버려지는 전기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사용하기 위한 ESS, 즉 에너지 저장 장치들이 고안되고 있는데 수소는 그 가운데 매우 효율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버려지는 전기를 사용하는 FCEV는 마치 EBV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효과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는 거시적 효율성입니다. 첫 번째는 충전 네트워크의 효율성입니다. 처음에는 전기차 충전소가 경제적입니다. 하지만 충전소 숫자가 늘어날수록 수소 충전 네트워크의 비용 효율성이 부각됩니다. 왜냐하면 BEV 충전 네트워크는 늘어나는 전기차 충전량에 맞추어 발전소를 늘려야 하는 인프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수소 충전 네트워크는 사용 방법이 매우 유사한 기존 주유소 네트워크를 대폭적으로 재활용할 수도 있고 수소 생산 설비는 대량 생산에 태생적으로 적합한 구조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원의 관점에서도 우리가 이미 전기차 경쟁에서 겪고 있는 문제점을 FCEV는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배터리는 코발트, 리튬 등 한정적인 자원을 대단히 많이 소비합니다. 이에 비하여 FCEV는 10% 이하의 자원만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FCEV가 전기차의 일정량을 감당한다면 현재 BEV 시장에서 보이는 과열 자원 경쟁을 완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연료 수소 전지가 백금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내연기관이 사라지면 촉매 정화 장치에 사용하던 백금의 일부만으로도 FCEV의 필요량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마틴 세러 iX5 하이드로젠 파워트레인 매니저의 iX5 소개가 이어집니다. iX5의 파워트레인은 매우 독특합니다. 최고 출력 195kW, 즉 401마력의 고출력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최고 출력 125kW를 꾸준히 낼 수 있는 연료 전지 스택과 최고 출력 170kW의 높은 방전량을 가진 배터리를 이용하는 구조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연료 전지 스택은 최고 출력을 불과 몇 십 초밖에 유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BMW는 전체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설계하여 최고 출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고성능 연료 전지 스택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은 독일 아우토반을 고속 순항해야 하는 주행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무거운 차체를 급가속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기존의 FCEV들이 갖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고출력 배터리를 장착했다는 점에서도 BMW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어울립니다. 아울러 트레일러를 견인하고도 알프스 산악 지대를 힘차게 올라가야 하는 환경적 요인도 감안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시승시간입니다. 100대 미만의 극소수만 제작된 iX5 가운데 두 대가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BMW 드라이빙 센터의 트랙 한 바퀴를 달리는 아주 짧은 시승이었지만 가진 성능을 다 꺼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임시 반입으로 번호판도 없는 차량을 시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BMW 드라이빙 센터의 특별함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시승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후륜 구동 – 401마력, 게다가 응답성 최고의 전기 파워트레인이라면 화끈한 드리프트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의외로 iX5는 유순했습니다. 아무리 가속 페달을 과격하게 다루어도 좀처럼 안정감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기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에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 이것은 의도적인 설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BMW가 iX5의 사용 환경으로 설정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바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여행입니다. 401마력의 출력이 강렬한 임팩트보다 풍성한 여유로움으로 느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BMW는 단순히 신기술이나 출력을 과시하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2050년까지 이루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의 막중함을 위하여 모든 기술적 자산을 총동원하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해답을 성숙하게 고민하고 있는 BMW의 모습을 보며, 그 미래가 하루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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