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BMW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뉴 5시리즈’를 보게 하라
BMW의 대표 모델이 가진 이름값을 제대로 증명한 뉴 5시리즈
슬며시 단풍이 접어든 가을입니다. 가을하면 으레 단풍을 떠올리죠. 어떤 것을 생각할 때 그것과 가장 연관되는 것이 곧잘 떠오르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산타가, 프랑스 하면 파리 에펠탑이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때로는 인물이 되기도, 어떨 땐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당신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BMW를 생각한다면 어떤 차가 떠오르시나요? 다양한 답변이 들려오겠지만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답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아묻따’라 하지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BMW하면 ‘5시리즈’ 입니다. 전세계에서 BMW 5시리즈가 가장 많이 팔린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5시리즈가 2017년 이후 6년 만에 완전히 탈바꿈한 풀체인지로 새롭게 출시했습니다. 8세대로 돌아온 5시리즈, 이번 신형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요? 그간의 인기 비결은 어디에 있던 걸까요? 자세히 살피고자 직접 풀체인지 뉴 5시리즈 530i의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탑승하고자 차량 앞을 기웃대다 보니 익숙한 외관에 안정감이 듭니다. BMW의 독보적인 상징인 키드니 그릴이 여전히 전면부를 장식하죠. 한때 점점 커졌던 키드니 그릴은 신형 5시리즈에서 적절한 사이즈를 찾았습니다. 5시리즈 F바디나 G바디 때의 그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대신, 바깥 테두리에 조명을 달았습니다. BMW의 새로운 상징이 될 ‘아이코닉 글로우’입니다. 거기에 그릴 내부 디자인은 더 올곧고 심플해졌죠. 하부 범퍼는 여전히 잘 달릴 것 같은 형상입니다.
이번 신형 5시리즈는 전기차 버전인 ‘i5’와 동시 출격했는데요, i5에도 마찬가지의 볼드한 그릴과 범퍼가 심어졌습니다. 내연기관과 전기차 간의 디자인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다는 BMW 전략과 일맥상통하죠. 그것이 전기차이든 6기통 엔진이든, BMW 다운 차를 만드는 것. BMW의 목표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구형이든 신형이든, 5시리즈의 측면은 단 한 번도 섹시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우락부락한 근육이 만들어내는 부담스러운 섹시미가 아니죠. 적당히 탄탄한 몸매로 만들어내는 은근한 섹시미가 돋보입니다. 자동차 바디에서 미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캐릭터라인이죠. 신형 5시리즈엔 단 두 개의 캐릭터라인만이 그려집니다. 슬릭한 두 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볼륨감과 직선감은 바디 전체에 특유의 안정감을 만들어냅니다.
측면에 품은 숫자 ‘5’가 유독 눈길을 끌죠. BMW의 상징적인 고유 디자인 호프마이스터 킨크쪽에 붙은 가니쉬에 새로운 음각의 디테일이 새겨졌습니다. 형님인 7시리즈에도 동생인 3시리즈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최초의 시도입니다. 5시리즈가 얼마나 중요한 차인지 보여주기 위해 숫자에 무게감을 실은 셈이죠.
여기에 훨씬 얇아진 테일램프로 인해 깔끔해진 후면도 매끈한 바디감을 살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덕분에 신형 5시리즈는 역사상 가장 모던하고 세련된 외관을 가질 수 있던 듯싶었습니다.
저녁 무렵 야간 시승을 해보려 한 것은 분명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게 5시리즈가 맞는지 몇 번 눈을 비볐습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어둑해진 저녁을 비웃듯 화려한 불빛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7시리즈에 먼저 적용된 ‘인터랙션 바’가 눈길을 끕니다. 상위급 차량에서만 보던 고급 무드램프입니다. 흔히 마주치는 얇디 얇은 무드램프가 아닌, 굵고 넓직한 투명 글래스 너머로 빛이 오롯이 투과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센터페시아에 시동 버튼, 변속 토글, 다이얼도 무려 ‘크리스탈’ 입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고급감은 승객이 느끼는 프리미엄 필링을 한 차원 끌어올립니다.
내부 테크놀로지도 초고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한 컨트롤 디스플레이는 14.9인치. 여기에 스티어링 휠 뒤로 12.3인치의 디지털 계기판이 돋보입니다. 타협 없이 완전한 디지털화를 이뤘습니다. 특히 통합된 디스플레이는 파노라마 형태로 운전석을 감싸는 형상입니다. 드라이버가 가장 편하게 디스플레이를 조작할 수 있도록, 운전자 중심의 실내를 유지한 모습입니다.
이번 신형 5시리즈는 역대급으로 길어졌습니다. 5시리즈 답게, 전장도 5m를 넘겨 5060mm나 되죠. 7세대 대비 95mm 늘어난 겁니다. 앞뒤 축간거리 역시 20mm 늘어났어요. 자태는 더욱 위풍당당해졌고, 차체의 확장은 2열에 앉는 승객에게 모종의 여유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동급 차량 대비 가장 큰 실내외 공간이 마련된 뉴 5시리즈입니다.
드디어 운전을 시작하고자 스티어링 휠을 잡았습니다. 적당한 굵기의 그립감은 여전히 명불허전. 주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운전 ‘맛’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줍니다. 거기에 적당히 편안한 시트는 덤. 조작 시 젠틀하게 움직이는 전동식 시트 역시 프리미엄 세단이 갖춰야 할 기본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뉴 5시리즈에는 신형 이피션트 다이내믹스 모듈러 엔진이 탑재됐습니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이 적용된 신형 엔진이죠. 덕분에 주행을 본격 시작할 때부터 초기 가속감에 은근한 파워와 부드러움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특히 이번에 시승한 530i xDrive의 최고 출력은 258마력, 최대토크는 40.8kg.m를 발휘합니다. 거기에 제로백은 6.1초. 일상에서도 펀드라이빙을 느끼기에 충분한 성능입니다. 실제로 초반 가속을 실현해보니, 안정감 있게 속도를 뻗어 내더군요.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 BMW가 늘 강조하는 ‘Sheer Driving Pleasure’는 주행한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쉬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형 대비 훨씬 커진 체급을 생각하면 놀라울 만한 재미죠.
구형과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코너링에서의 핸들링 감각입니다. BMW의 핸들링 감각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쫀쫀하다’고 표현하는 조작감이죠. 여전히 그렇습니다. 이에 더해 극강의 부드러움을 두 스푼 가량 더했습니다. 이따금 묵직하게 돌려줘야 했던 강력한 탄도가 훨씬 유려하고 부드러워졌죠. 5시리즈를 처음 타보는 이도 곧바로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운전이 더 쉽고 편안해진 겁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이번엔 센터페시아의 ‘My Modes’ 버튼을 통해 드라이브 모드를 변경해봤습니다. 스포츠 모드를 누르는 순간, 다시 실내의 인터랙션바가 말그대로 차량과 ‘상호작용’을 하더군요. 스포츠 모드의 상징적 컬러인 새빨간 불빛이 순간 심장을 동요케 합니다. 화끈하게 달리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내죠. 살짝만 엑셀 페달에 발을 올려도 불끈한 감각이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반 노멀 모드와는 달리 즉각적으로 가속 페달에 반응하니, 훨씬 다이내믹한 승차감이 느껴졌습니다. 패밀리카급의 준대형 세단을 타고 있다는 것이 여전히 믿겨지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5시리즈는 예나 지금이나 재밌고 똑똑합니다. 기본 제공되는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프로페셔널’에는 스톱 앤 고 기능까지 포함된 고속도로 주행보조 기능이 탑재되죠. 차간 거리는 물론, 차선을 중앙으로 유지해주는 것까지 완벽하게 수행합니다. 커진 체급에 부담을 느낄까 주차 문제마저도 걱정을 줄여줍니다. 주차나 후진 시 상황 파악을 수월하게 도와주는 ‘파킹 어시스턴트 플러스’ 역시 기본 탑재입니다. 전면이든 후면이든, 주차 시 파노라마 뷰로 차량과 주변 환경을 판단할 수 있어 주차에 따르는 피로감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이름값’. 뉴 5시리즈는 ‘5시리즈’라는 BMW의 대표 모델이 가진 이름값을 제대로 ‘증명’하는 차입니다. 더 넉넉해진 차체,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는 외관, 7시리즈의 럭셔리를 물려받은 실내, 거기에 5시리즈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부드럽고 날렵한 승차감까지. 530i와 달리는 내내 그 ‘이름값’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동차엔 고유의 코드네임이 붙습니다. BMW가 맨 처음 코드네임을 부여받았을 때 ‘E+숫자’ 방식을 활용했어요. 이 때 알파벳 E는 독일어 Entwicklung의 앞글자에서 따왔죠. ‘발전’이란 뜻입니다. 탄생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발전하는 차, 그게 바로 5시리즈의 운명입니다. 그 발전의 가장 최정점이 이번에 출시한 뉴 5시리즈입니다. 누군가 BMW의 미래를 묻거든 이렇게 말하고 싶더군요. “신형 5시리즈, 일단 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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