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뾰족한 세컨드카, MINI 일렉트릭
노란색 시동 스위치를 눌렀다. 빨간색이 노란색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새삼 기분이 다르다. 소리 역시 다르다. 엔진이 깨어나는 소리 대신 극적인 전자음이 실내를 채운다. 마치 게임기에서 시작 버튼을 누른 것처럼. 혹은 SF 영화에서 비행체가 기동하는 것처럼. 노란색과 소리는 기존 MINI와 MINI 일렉트릭의 가장 큰 차이다. 바뀐 건 이것뿐인데, 이것만으로 첫인상의 대부분을 좌우한다. 익숙한 MINI인데 또 다른 MINI로서 자극한다. 전기 파워트레인을 품은 MINI로서 분위기를 전환한달까. 게임 속 모험을 시작하듯 새롭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MINI는 운전자를 흥겹게 하는 지점을 잘 파악한다. MINI 일렉트릭 역시 솜씨가 여전하다.
가야 할 곳이 많다. 보통 시승 행사는 근교로 쭉 달릴 수 있는 코스를 짠다. 이번에 다르다. 시내를 이곳저곳 다니는, 목적지가 여럿인 코스다. 아케이드 게임하듯 퀘스트를 달성해야 한다. 차의 성격과 용도를 고려한 맞춤 코스다. 일반적인 시승이라면 볼멘소리부터 나올지 모른다. 잠깐 타고 멈추고, 또 잠깐 타는 시승은 드문 일이니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꽤 합리적인 코스다. 제 무대에서 감각을 파악하는 시승 아닌가. 고성능 자동차를 서킷에서 타고, 정통 오프로더를 산에서 타는 것과 같다.
MINI 일렉트릭은 도심형 전기차로 기획한 모델이다. 작은 차체에 배터리를 담은 만큼 주행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다. 대신 작은 차체만이 줄 수 있는 경쾌함을 내세운다. 도심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데 유용하다. 용도가 명확한 모델이란 뜻이다. 전기차 시대에는 이런 목적성이 더욱 뾰족해진다.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는 태생적 제약이 모델을 세분화한다. MINI 일렉트릭은 애초 명확하게 용도를 설정했다.
중요한 점은 그 용도를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점이다. 가속페달을 밟아 그 해답을 찾아본다. 출발지는 복잡한 번화가 중심부. 그 동안 수많은 시승차를 타왔지만, 내 차가 아니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금세 부담은 사라진다. 일단 차체가 작아서 좁은 길에서도 초조하지 않다. 3세대로 오면서 MINI가 커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자동차는 그 사이 더 커졌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덩치 키우는 건 자동차 시장의 흐름이다. MINI는 커졌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작다. 편의성을 챙기면서 정체성을 유지한 셈이다. MINI 일렉트릭을 타면서 더 분명하게 느꼈다. 상대적으로 작아서 부담이 적고, 예전보다 편의성이 뛰어나다.
시내 도로에 나가자 MINI다운 경쾌함이 살아난다. 아니, MINI 일렉트릭은 더 농도 짙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전기모터 품은 MINI니까. 이 문장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전기모터의 특성 상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최대토크를 뿜어낸다는 일반적인 의미. 다른 하나는 MINI다운 작은 차체가 강력한 초반 펀치력을 획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의미. 모든 전기차는 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최대토크가 나온다. 하지만 MINI 일렉트릭에서 느끼는 감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애초 MINI는 경쾌하게 달리는 고-카트 필링(Go-Kart Feeling)을 품은 자동차 아닌가. 활달하고 경쾌한 감각이 기본 뼈대에 담겨 있다. 거기에 전기차다운 펀치력을 발휘하니 경쾌함의 농도가 더 짙을 수밖에 없다. 전기차 특성이 재밌게 달릴 줄 아는 MINI와 만난 결과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60km까지 3.9초 만에 도달한다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시속 100km까지는 기존 미니 쿠퍼 S와 비슷하다. 하지만 시속 60km까지는 보다 민첩하다. 시속 60km는 도심에서 주로 오르내리는 속도 구간이다. 도심 주행이라면 MINI 일렉트릭이 한층 경쾌하다는 뜻이다. 전기차만의 특징도 이런 경쾌함을 배가한다. 전기차는 실내가 조용하다. 조용한 와중에 가속하는 감각은 꽤 극적이다. 심장을 자극하는 배기음은 없어도 눈을 동그랗게 만드는 가속감이 있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쾌감이랄까. 실내가 조용하기에 더 순간이동처럼 느껴진다. 전기차는 대부분 그렇지만, MINI 일렉트릭은 차체가 경쾌한 만큼 더 진하다.
문득 도로 위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운전해서 어디로 간다기보다 유희를 즐기는 시간이랄까. 동글동글하고 알록달록한 놀이기구에 앉아 시내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코스를 타는 착각. 회생제동까지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놀이기구 같은 감각이 더 또렷해진다. 가속페달을 얼마나 잘 조작하느냐에 따라 점수를 더 얻는 게임이라도 하듯이. 개인적으로 전기차 회생제동 감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물론 회생제동 강도를 약하게 하는 스위치가 따로 있다. 그럼에도 괜히 도전 의식이 생겼다. MINI를 운전한다는 건 다른 무엇보다 재미가 앞서니까. 그동안 타온 MINI 모델들 모두 그 지점을 자극했다. MINI 일렉트릭 역시 그 감각이 무엇보다 앞선다. 전기차의 특성까지 더해져 방점을 찍는다.
압구정에서 한남동으로, 다시 남산 소월길을 돌고, 성수동으로 향했다. 그 사이 골목길은 수시로 나왔고, 주차하고 다시 출발하길 여러 번 반복했다. 아케이드 게임의 스테이지처럼 공략과 재출격의 반복이랄까. 그럴 때마다 아담한 차체는 부담을 덜었고, 발랄한 주행 감각은 재미를 더했다. 새로운 스테이지에 도전하는 게이머의 마음으로 매번 시동 스위치를 눌렀다. 고오오옹! 다시 경쾌한 몸놀림을 즐겨보라고 MINI 일렉트릭이 소리로 화답했다.
MINI 일렉트릭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짧기에 명확한 세컨드카를 지향한다. 세컨드카의 역할은 명확하다. 한 대로 모든 걸 다하기보다 자기 장기를 유감없이 전해야 한다. 스포츠카나 컨버터블이 세컨드카로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기분 전환용 머신으로서 활약한다. 세컨드카를 ‘시티 커뮤터’로서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복잡한 도심에서 보다 쾌활하게 이동하려는 주목적을 반영한다. MINI 일렉트릭 역시 시티 커뮤터로서 주목적이 도드라진다. 단, 다른 시티 커뮤터와 다른 점이 있다. 기분 전환용 머신 역할도 충분히 수행한다. MINI 특유의 민첩한 거동은 운전 재미를 자극한다. 게다가 MINI의 안팎은 긴 세월 쌓아온 재기발랄한 정체성을 반영한다. 놀이기구로 칭한 이유가 단지 주행 감각만의 얘기가 아니다.
스트레스 지수 높은 도심 주행에서 MINI다운 발랄함은 한결 기분을 전환한다. 이런 특징은 제원 숫자로 파악할 수 없다. MINI 일렉트릭은 MINI의 고유한 특성에 전기차의 새로움을 더했다. 시티 커뮤터로서, 기분 전환 머신으로서 경쟁력 있는 세컨드카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한다. 타보면 안다. MINI이기에 MINI 일렉트릭은 또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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