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대를 거듭해온 5시리즈의 성장이 여전히 옳은 이유
뉴 5시리즈 전기차 끝판왕, BMW i5 M60
자동차의 성장과 인간의 성장은 혹시 같은 곳을 향하는 여행일까? BMW i5 M60을 타고 서울 근교를 달리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진화한 세단. 스스로 혁신하기를 멈추지 않는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기도 했죠. 1972년 첫 출시 이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어요.
이번이 8세대 풀체인지입니다.
“이번 5시리즈에서는 라인의 수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습니다. 옆모습을 보시면 알 수 있어요. 딱 두 개의 선으로 정리했죠. 그리고 BMW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곡선이죠. 그래서 더 역동적인 표현이 가능해요.”
BMW의 디자인 수장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는 지난 10월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열린 뉴 5시리즈 출시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뉴 5시리즈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매우 담백해졌어요. 단정하거나 조용한 느낌은 아닙니다. 여전히 강력한 캐릭터죠. 최소한의 선으로 원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게 물성의 캐릭터까지, 그 날렵함과 공격성까지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 이거야말로 세상의 모든 산업디자인이 지향하는 목표 아닐까요?
선이 줄어들었는데 강력해 보이는 이유는 얼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헤드램프의 그래픽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했어요. BMW의 전통적인 헤드램프를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라디에이터 그릴도 마찬가지예요. 키드니 그릴의 역사적인 형상을 이어가면서 ‘아이코닉 글로우’라는 새로운 요소를 미래적으로 첨부했습니다. 키드니 그릴 테두리 라인을 얇은 빛으로 그려놓은 거죠. 어두운 곳에서 내 차와 점점 가까워지는 길, 이 아이코닉 글로우에 빛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BMW i5 M60과의 경험이 시작되는 셈이에요. 멋진 순간입니다.
헤드램프 라인은 양쪽 끝으로 향할수록 살짝 치켜 올라갑니다. 자동차의 전면부를 얼굴, 헤드램프를 눈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하면 눈매가 만만치 않은 누군가의 표정을 닮았죠. 라디에이터 그릴의 꼭짓점에서 보닛 위로 이어지는 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력이 한껏 고조된 누군가의 미간을 연상시키는 디테일이에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옆모습입니다. 8세대 5시리즈의 모든 새로움, 진화와 혁신까지를 이 각도에서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일단 깔끔합니다. 선이 거의 없어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옆모습을 이 정도까지 비워낼 땐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을 겁니다. 자동차의 성격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각도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딱 두 개의 선으로 정리했습니다. 끝단에서 치켜올라간 헤드램프의 형태와 단 하나의 캐릭터라인, 데이 라이트 오프닝을 감싸고 있는 크롬과 여전히 살아있는 호프 마이스터 킨크의 조합이 뉴 5시리즈의 속도감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습니다.
헤드램프의 높이와 리어램프의 높이를 한 번 비교해보세요. 트렁크 쪽이 훨씬 도톰하고 높다는 것을 시각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덕분에 차체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디자이너들이 이야기하는 ‘출발 직전의 육상 선수 같은’, ‘사냥 중인 맹수 같은’ 느낌의 모범 답안에 가까운 비율과 선이죠.
그렇다면 엉덩이 쪽은 생각보다 두툼해 보일 것 같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옆모습에서의 양감과는 관계없이, 엉덩이는 엉덩이 나름의 비율과 날렵함을 갖고 있어요. 새롭게 디자인한 리어램프가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대 5시리즈의 도톰하고 입체적인 선과는 완벽하게 이별했어요. 대신 얇고 날렵한 라인들이 그저 빛으로 이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인테리어에서도 비슷한 기조가 이어집니다. 매우 담백하지만 강렬한 몇 가지 포인트가 있고, 기본적으로는 거주 공간의 확장이라는 개념에 충실하면서도 BMW 본연의 즐거움에 집중하고 있어요.
일단 운전석과 조수석 계기판 하단과 대시보드를 가로질러 양쪽 도어 패널까지 이어지는 인터렉션 바가 눈에 들어옵니다. 투명한 크리스탈 커팅이 과감하죠. 평소에는 설정해 둔 엠비언트 라이트로 기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상등 작동과 함께 빨간색으로 10회 점멸하거나 운전에 필요한 신호들을 빛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운전석 계기판은 12.3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는 14.9인치에요. 광활한 디스플레이를 통해서는 최대 5G 속도의 동영상 스트리밍이 가능하죠. 가벼운 게임도 할 수 있고요.
전 세대 5시리즈에 비해 길이는 95mm, 너비 30mm, 높이는 35mm 증가했습니다. 정말 넓어졌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수치입니다. 실내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의 격이 달라요. 그러고보니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는 이번 5시리즈의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해 ‘거주 공간의 확장’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거실이나 서재, 소파나 안락 의자 같은 역할을 요소요소 해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는 뜻이에요. 그 중심에, 확연하게 넓어진 공간이 단단한 기둥 역할을 꼼꼼하게 떠받치고 있는 셈입니다.
이토록 커진 차체를 더 날렵해 보이도록 세공한 정교함과 담대함. 넓어진 인테리어에 가득 채울 수 있는 가족과의 추억들. 전체적으로 더 담백해진 터치를 통해 더 풍성한 말을 건내는 성숙함까지. 제가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이 소개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BMW가 아니죠. 달려봐야 해요.
BMW i5 M60은 5시리즈의 꼭짓점에 위치하는 전기차입니다. 게다가 M 퍼포먼스 모델이죠. 최고출력은 601마력, 최대토크는 81.1kg.m에 달해요. 제로백은 단 3.8초입니다. 어마어마한 성능이죠. 그런데 일상 주행에서는 호수 위에 가만히 떠 있는 듯합니다. 전기차니까 소리와 진동이 없는 건 그렇다 치죠. 하지만 달릴 때마저 그렇게 고요한 건 무슨 뜻이죠? 그러다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워프할 것처럼 맹렬하게 극단적인 성격은? 그 모든 가속과 브레이크, 회전의 감각 안에 어쩌면 가장 큰 놀라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농익은 감각으로 편안하고 안락하지만 진짜 힘, 극한의 짜릿함을 위한 무기 또한 놓치지 않습니다. BMW니까요. BMW가 만든 가장 진보한 형식의 세단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성장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철학은 그대로 유지한 채 더 많은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 태도를 삶으로 구현해 나가는 거라고. 8세대 5시리즈, i5 M60이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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